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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창 ]
[940호] 2010년 04월 05일 (월) 17:45:01 공주신문 webmaster@e-gongju.com
조 영 숙

  땅들이 꿈틀대고 있다. 생명을 품은 싹들이 땅속에서 아기발가락처럼 꼼지락대며 간지럼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면 사슴녹용 같은 목련봉오리가 솜털옷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고 산수유는 벌써 피어 하얀 눈이 내렸을 때에도 끄떡 않고 마당에서 웃고 있다.

  길가에 있는 나무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지만 마치 새 옷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들뜬 표정으로 으스대며 서 있다. 마중 나가지 않아도 알아서 예쁘게 차려입은 봄이 저만치서 걸어오고 있다.
출근길이 멀어진 만큼 운전하면서 느껴지는 긴장감으로 피곤함이 더해졌지만 그에 반해 자연과 함께 할 시간들이 많아졌음에 약간의 기대감도 생긴다.

  8년 전, 운전하며 출근했던 길을 다시 가면서 예전의 길과 많이 달라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꼬불꼬불 꽈배기처럼 꼬인 길, 타원으로 휘어진 길, 곧게 뻗은 가로수길 등 마을을 지날 때마다 느껴지는 풍경은 그 마을의 전설을 담고 있는 듯 서로 다른 느낌을 주었다.

  4월, 하얀 배꽃이 눈송이처럼 내린 과수원길 옆으로 얼었던 냇물은 한번 삶아놓은 국수 면발처럼 부드럽게 흘러가고 있었고 허리를 굽혀 논바닥 흙을 일구는 농부아저씨들의 모습은 밀레의 그림을 옮겨 놓은 듯 참으로 정겨워 보였다. 그 풍경을 상상하며 8년 전의 길을 따라갔건만 예전에 보았던 마을길, 논두렁길 정다웠던 시냇물의 모습은 도로 밑 아득한 동네에 가려져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크고 작은 사연이 담긴 마을 뒷산은 반으로 쪼개져 그 벌려진 틈으로 수많은 차들이 씩씩대며 달려가고 있다.

  간혹 어르신들이 경운기나 리어카, 오토바이, 자전거라도 타고 앞에 가시면 속으로 애를 태울망정 추월 않고 천천히 따라갔다가 지각할 뻔했던 일도 많았었는데. 시원하게 뻥 뚫린 도로에서는 같은 속도로 가다가 조금만 늦추게 되면 응급 사이렌 소리만 안 들렸지 금방이라도 차 속을 뚫고 지나가려는 듯 속도를 멈추지 않고 달려오는 차들만 가득하다.

  예전의 마을길에는 곳곳에 정다움과 소박한 이야기 거리가 있었지만 지금의 도로는 반짝 빤짝 보내는 추월 신호만 있을 뿐 속도만이 존재하는 도로가 되어버렸다. 차가 뜸한 날 모처럼 음악을 들으며 운전을 하다가도 갑자기 뒤에서 번쩍 거리며 달려오는 차를 보면 그냥 양보하면 될 텐데 이유 없는 경쟁심이 생겨 반사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아본다. 추월당하기 싫어 정신없이 가다보면 속도계의 화살표가 오른쪽으로 한없이 기울어져 있어 놀란 가슴에 슬쩍 페달을 놓아버린다. 혼자 갈 때는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며 편안하게 갈 수 있는데, 왜 다른 차만 나타나게 되면 더 빨리 달려가고 싶어지는지. 앞만 보고 달리다가 문득 멈추게 될 때는 가끔 서 있는 신호등의 불이 바뀔 때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신호를 잘 지키지만 어떤 분들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린다.

  예전에는 경찰아저씨의 단속이 무서워 정지를 했는데, 지금은 누가 보든 안 보든 다른 차가 신호를 지키든 안지키든 신호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째깍 째깍 쫑알대는 시계를 무시하고 앉아 있다. 기다리고 있으면 신호등이 말한다. “잠시 멈추어 가”, “ 이젠 가도 돼” 라고 신호등을 보면서 내 마음의 신호등은 어떤 색들이 있을까 떠올려 본다.

  ‘앞만 보고 달리지 말자’, ‘다른 차가 지나갈 때는 잠시 비켜도 주자’ 이런 신호를 느끼면서도 종종 어기고 못 본 척 무시하며 살아왔다. 목적을 위해 한 치의 양보 없이 앞만 보고 내지르는 차들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닐까? 내 마음의 신호등이 시키는 대로 착하고 예쁘게 살아가고 싶다.

  유년시절 길가에서 보았던 들꽃과 풀들, 알록달록 곤충들, 꿈틀 꿈틀 기어다니던 작은 동물들을 보면서 일기를 쓰고 꿈을 키워왔는데 우리 아이들은 스쿨버스, 아버지의 승용차, 학원버스의 안전벨트에 묶여 애기똥풀이 무슨 색인지 냉이꽃이 달랑 달랑 소리를 내는지 조차 모르고 자라고 있다. 길가에 앉아서 제비꽃, 민들레꽃 향기를 맡고 무당벌레, 달팽이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신기한 듯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너무 그립다.

  넓은 길, 좁은 길, 꼬불꼬불 언덕 길, 쑥과 씀바귀가 지천에 깔린 길,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길에 서서 저만치 걸어오는 봄님을 맞으러 아이들과 함께 촐랑촐랑 뛰어나가고 싶다.

/유구초병설유치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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