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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전쟁 |
| [기고]- 신국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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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는 몰라도 금년의 여름은 유별나게 덥습니다. 연일 삼십여도를 웃돌다보니 찜통더위, 불볕더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더위와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경북 칠곡에서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던 노부부가 일사병으로 숨졌다는 안타까운 보도가 있었고 우리 지역 공주도 계속해서 폭염주의보가 발효 중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농부가 일손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위에 물러져 가는 고추를 수확해야 하고 두태밭을 매야하고 들께모를 식재해야 하고 논마다 농약을 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위를 피해 꼭두새벽이나 저녁 해걸음을 이용해 종종 걸음을 쳐보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고 늘 일에 눌려 사는 게 농부의 일과입니다. 조금만더 조그만더 일을 감해 보려고 억지를 부리다 보면 금시 땅의 열기가 치솟고 옷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어 버립니다.
기계화가 되면서 다랑논들이 다 묵어 자빠지는 요즘 우리 논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금년에는 콩 직불금이라도 받을 요량으로 이장을 통해 신청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기존 신청한 사람은 되고 금년 처음 신청자는 제외된다는 이장의 얘기에 기가 막혔습니다. 한 이태 동안 쌀 생산량이 줄어서 그렇다나요 농정정책이 늘 그렇듯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인지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래도 우리 부부는 콩을 식재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산짐승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십여만원어치 그물망을 사고 망을 고정시킬 말뚝도 수만원어치 사고 삼사일 동안의 장고를 거쳐 칠백여평의 논에 울타리를 완성했습니다. 투자한 돈이야 얼마던 간에 이만하면 완벽하려니 하고 삼분의 이는 콩을 그 나머지는 팥을 식재했습니다. 콩과 팥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수고한 보람을 느낄 무렵의 어느날 고라니의 피해를 입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둘러쳐진 그물망을 빙돌아 가면서 꼼꼼히 살피던 나는 아차 하는 실수를 발견했습니다. 물이 잘 빠지도록 논두렁에 도랑을 쳤는데 그 작은 구멍을 통해 새끼 고라니가 들어와서 잎을 다 뜯어먹고 앙상한 대공만 남겨놓은 것입니다. 허탈한 심정으로 다시금 구덩이의 양쪽에 말뚝을 박고 철사로 꼼꼼히 엮어 망을 늘어 붙들어 맸습니다. 원칙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도 힘에 버거운데 산짐승들까지 단속을 하느라고 가위 일을 더하게 되니 신경이 곤두서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몇몇 분들은 암암리에 덫과 올무를 설치하여 도둑놈들을 잡기도 하지만 워낙이 개체수가 많아서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습니다. 뒷동네 사시는 아주머니는 집옆의 고구마 밭을 멧돼지가 내려와 다 파헤쳐 폐농했다고 울먹입니다. 산짐승들의 피해는 해마다 극심해져 가는데도 수렵허가는 어쩌다 내주고 농업관련 당국이나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수수방관하다 못해 산짐승들의 피해가 적은 작물을 심으라고 헛소리입니다. 그런 말의 의미를 곰곰이 씹어보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의미인 듯하여 한없이 씁쓸해 집니다. 허긴 그 까짓 것 심어 보았자 자재 값과 품값도 안 되는 수확이지만 어디 농부가 꼭 수지타산만 맞추고 농사를 짓습니까? 단 한평의 땅도 놀려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 있고 수확 후에는 바리바리 싸서 이 자식 저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는 재미 때문이지요.
소나기라도 한 줄금 하려는지 말벌에 쏘인 부분이 가려워옵니다. 며칠 전 밤나무 밑의 잡초를 제거하다 썩은 소나무 그루터기를 건드렸는데 그 속에 말벌 군단이 자리잡고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산비탈에서 예초기를 짊어지고 피한다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닙니다. 갑자기 엉겨붙은 말벌들을 뿌리치며 미끄러지고 뒹굴기를 몇 번 그러나 놈들은 이미 왼 팔뚝과 오른쪽 목에 깊은 살을 박은 후였습니다. 금시 온몸이 군시럽더니만 붉은 반점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부랴부랴 서둘러 자가용을 타고 면내의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혈압이 무려 백구십이 넘더군요. 일반 손님들을 제쳐두고 주사를 두 방이나 맞고 약 처방을 받고 다행히 숨은 그리 가쁘지 않아 의사의 지시대로 집에 와서는 얼음찜질을 하고 안정을 취했습니다. 근데 이상했습니다. 몸은 더 가렵기 시작하고 붉은 반점들은 계속 돋아나 마치 마당에 널어놓은 콩멍석 같았습니다. 고통의 신음이 저절로 터져 나왔고 가려움에 피가 나는 고통을 감수하여 긁어야 했습니다. 집사람의 지극하고 정성스런 간호에도 불구하고 난생 처음 지옥이라는 것을 체험하고 무려 다섯 시간의 악몽 끝에 살아났습니다.
아직도 전쟁은 계속됩니다. 태풍과의 전쟁, 장마와의 전쟁, 잡초와의 전쟁, 해충과의 전쟁, 산짐승과의 전쟁, 총성이 들리지 않고 연기가 나지 않는 전쟁,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 전쟁, 그렇게 일년을 버티어 내야 겨우 휴전에 들어가는 것이 농부들의 모진 삶입니다.
그런데 이것 아십니까? 농업을 도외시한 미국, 페루, 중국과의 FTA 체결을 빌미로 우리 경제가 세계 속의 한국으로 부상하고 이 만큼 살만한 나라가 된 것이 우리의 먹거리 생산을 위하여 끊임없는 전쟁을 계속하며 피땀 흘려 수고한 농민들의 힘이라는 것을.
/본지 명예기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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