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태 묵

  지난해 말 광주광역시 동구청의 축제 토론회에 갔었습니다. 6회째 개최된 7080충장로 축제의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습니다. 시민, 시의원, 구의원, 공무원, 기자들로 300여석의 대강당이 꽉 차 있더군요. 제가 할 일은 ‘7080충장로 축제와 백제문화제의 비교’발표이었지요. 백제문화제를 배우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긴장이 되더군요. 광주민주화운동의 중심거리에서 70∼80년대 잊혀져 가는 노래와 복고풍을 흥미 있게 재현하는 축제였고, ‘7080’이라는 말도 이 축제가 만들어 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발제를 끝낸 후 질문들이 쏟아지더군요. 한 시민이 물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백제문화제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저는 그 시민에게 역으로 물었습니다. 7080축제는 왜 하는지를. 오늘 주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하더군요. 순간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했습니다. 우리 공주사람도 백제문화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겠구나, 그 돈으로 길을 더 포장하고 다리하나 더 놓고 관광지 하나 더 만든다면, 어려운 주민들을 위한 복지에 더 쓴다면 효과가 훨씬 클 것이라는 느낌말입니다.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리고 나서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함평나비축제를 가본 적 있냐고요. 다녀왔는데 함평은 100억원 이상을 써도 그 몇 배 농산물을 팔 수 있지만 백제문화제나 충장로 축제는 혈세만 낭비하는 것 아니냐고 목청을 높이더군요. 축제에 대한 기본인식부터 문제였습니다. 축제는 시민 화합형 축제, 산업형 축제, 전통형 축제, 지역 개발형 축제가 있는데, 충장로 축제는 당장의 수익을 유발시키는 산업형 축제와는 다른, 도시를 한 차원 끌어 올려 최적의 환경을 만들고 지역의 좋은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지역개발형 축제라고 했지요.

한국이 일본 학생보다 키가 큰 이유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낀 것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후인 90년대부터 이었다고 합니다. 선우종 기자가 쓴 ‘일본의 힘’이라는 책에서 한국과 일본의 고교생 평균 신장을 비교해 볼 수 있었습니다. 1970년, 일본 학생의 평균 신장이 167.8㎝로 한국의 165.9㎝보다 1.9㎝ 더 컸더군요. 본래 일본은 ‘왜놈’이라고 하여 키가 작은 민족 아닌가요. 이런 키 가 점점 더 벌어져 1980년 일본이 2.3㎝까지 더 컸지만 역전현상이 벌어진 것은 1993년, 한국학생들이 0.2㎝를 추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속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되었습니다.

  2002 월드컵을 치른 후인 2005년에는 한국이 2.8㎝ 더 큰 키 차이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청소년 신장 차이가 가장 크게 벌어 졌었던 1980년 차이를 넘어선 수치지요. 이런 시기에 체격의 큰 변화를 가져온 이유는 유전자가 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전자를 자극하는 외부환경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원인은 복합적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를 ‘큰 축제’로 보고 있습니다. 1964년 동경올림픽 후 1971년 7월 도쿄 긴자에 문을 연 일본 맥도날드 1호점, 17년 후 1988년 3월 서울 올림픽 때 압구정동에 문을 한국 맥도날드 1호점은 두 나라에 ‘풍요’를 알리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맥도날드가 진출할 무렵 한국이나 일본이나 쇠고기, 햄소시지, 버터, 우유 등이 대중들의 음식으로 변한 거지요. 축제가 한국인의 성장 유전자를 자극하자 한국 청소년들이 단숨에 일본 청소년들의 키를 역전시킨 것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학생들의 신장이 국가 발전과의 관련은 없습니다.
 
  하지만 ‘풍요’라는 환경에서 성장 유전자가 잠에서 깼듯이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다른 우성(優性) 유전자도 잠에서 깨어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세계 사람들이 ‘Japanese’는 알아도 몰랐던 ‘Korean’을 알기 시작한 것이나 삼성, LG, 현대를 세계 시장의 최고 상품이 되기 시작한 것도 88올림픽 덕분 아닙니까. 영국작가 조엔롤링을 끌어 들여 세계 최대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해리포터’를 쓰게 만든 것도 에딘버러축제인것 처럼 축제를 가지고 고민할 자격을 있지만 부족하다고 좌절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과거라고 미래를 담보해 주지않아

우리도 올해 2010세계대백제전이 9월 18일부터 한 달 동안 개최됩니다. 공주는 다른 도시 보다도 문화수준이 높습니다만 축제를 활용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준비하는 분들보다는 240억원의 거액을 퍼 붓는다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공주, 부여로 나누니까 120억원 만 공주에서 쓰는 셈이지만 아무래도 큰 금액이 아닐 수 없지요. 하지만 축복 아니겠습니까. 올림픽 축제 하나로 미래의 성장 동력들이 잠에서 깨어나듯이 봉황처럼 비상하고 싶어하는 백제의 꿈을 세계를 향해 펼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물질에만 메 달리다 보면 상승기회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지역 전체에 꽉 차오르는 에너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새로운 발전 동력의 전환점이 되고 지역 발전의 추동력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명품 음식점이 곳곳에 박혀있고 온통 거리와 집들이 꽃으로 뒤덮인 환상의 시가지, 친절과 질서, 그리고 골목도 세계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뒷골목의 춤들이 세계 최고의 비보이를 탄생시킨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축제는 결코 돈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대단한 과거가 미래를 담보해 주지도 않습니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되어야 다른 도시가 부러워하는 미래를 가질 수 있습니다. 모쪼록 올 가을엔 이 같은 백제정신이 세계 속에 크게 펼쳐지길 기대해 봅니다.
/공주시 관광축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