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덕 수

  1960년대 초반, 내가 자란 연기군 시골 마을만 해도 학교보다는 서당에 다니는 애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형님들을 쫓아 서당엘 가곤 했다. 눈 쌓인 한 겨울, 개울 건너 산길을 지나 서당엘 가면, 사랑방에 수염이 긴 할아버지 훈장님이 앉아 계셨다. 뵙자마자 얼른 큰 절을 드리고 나서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어제 배운 걸 외운다. 더듬거려 외우는 사이 훈장님이 쇠화로에 담뱃대를 탁탁 두드리면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곤 했다. 그런 서당생활은 잠시, 천자문도 미처 다 배우지 못하고 서당이 아닌 양옥집의 학교를 다니면서 서당은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작년에 논어를 배울 기회가 있어 몇 달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진작 배울 걸, 진작 공자님 말씀을 알았더라면 하는 생활의 지혜가 논어 전편에 수북했다.

불효자의 부끄러운 반성문

  오늘날 효의 대상은 부모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만 제대로 하려해도 벅차다. 옛날에는 조부모, 부모, 형제간 등 효의 대상이 넓었다.

  공자님 말씀인 논어에는 효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많고 논어의 핵심사상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지 몇 년이 지났다. 최근 공자님 말씀을 배우고 보니 불효를 많이 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공자께서 “요지음의 효는 잘 봉양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제대로 된 효도가 아니다.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은 개와 말에게도 한다. 어버이를 존경하지 않으면 진정한 효가 아니다”고 하셨다. 꼭 나한테 하는 말씀 같다. 존경심과 사랑으로 어머님을 모신 것이 아니라 밥 해드리고 옷 입혀주는 물질적 봉양만 효로 알았다. 그 마저도 힘들어했다. 물질적 봉양보다는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효도가 진정한 효도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오히려 어머니 모신다는 위세를 부리지는 않았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또한 공자께서 “술과 음식 등을 잘해 드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만 낯빛을 온화하게하고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나는 어떠했는가. 연로하고 힘없는 어머니에게 신경질 내고, 소리 지르고, 낯빛을 붉힌 적이 많지 않았던가. 정말 부끄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상할 정도로 슬퍼하지 말라

  사실은 논어를 읽기 전에도 부모님, 특히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불효가 생각나면 차안에서건 누가 보지 않으면 주르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어디 나 뿐이랴. 대한민국에 나이께나 든 분들은 다 나와 같을 것이다. 나에게 어머니는 어머니 이상이다. 인생에서 역경에 닥칠 때마다 어머니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러다 보니 여러 형제 중 유독 나에 대한 어머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나와 집사람, 형제간에 갈등의 요인이 되는 등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그래서 한 때는 어머니의 품에서 빨리 벗어나야지. 심지어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곤 했다. 그런데 정작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그때 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안정된 공직생활을 버리고 선거에 출마해 떨어지고 나서 직업도 없는 백수의 상태였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은 나와 어머니에게 최악의 상황이었다. 속된 말로 돌아가실 때 내 걱정 때문에 제대로 눈을 못 감으신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연세가 많아 돌아가셨는데도 돌아가신 것이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든지(실제로 그런 부분이 있음), 적극적인 진료에 동의 하지 않으려 했던 형님들에 대한 원망이라든지(이 부분은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임), 바쁜 세상에 조카들의 할머니 병문안 자주 안 온다고 불효막심하다고 화낸 일 등 현대인에게는 비상식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곤 했다.

  또한 돌아가신지 오년이나 되었는데도 어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메어지곤 하는 등 많은 경우 도가 지나치게 어머님에 대한 슬픈 생각과 추억 속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던 중 논어에 나오는 애이불상(哀而不傷)이라는 구절을 배웠다. “슬퍼하되 상할 정도에는 이르지 말라.” 또한 효에 대해 “효는 자식이 건강한 것이 효이다. 부모는 오직 자식들이 아프고 병나는 걸 제일 걱정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참으로 맞는 말씀이다. 깨치고 나니 내가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나는 이제 어머니를 기억하고 추모하되 내가 상할 정도로 울지는 않겠다. 논어에서 배운 지혜이다. 공자님 말씀을 듣고 마음의 병을 고친 것이다.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문화연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