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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와 안개꽃 그리고 장미 |
| 박홍서 기고/공주중학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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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태양이 뜨겁다. 그냥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저녁 무렵 더위도 피하고 운동도 할 겸해서 오랜만에 정안천변을 걸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걷기도 하고 그늘 막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그 중에서 유난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30대 초반의 젊은 부부였다. 유치원생인 듯한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연꽃 논둑을 돌아 나오며 내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젊은 애기 엄마는 물과 어우러진 정안천변 풍경 자체가 경이로운 듯, 아들한테 뭐라 뭐라 하며 자꾸 손짓을 했다.
내가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갈 무렵, "와우! 저기 안개꽃 좀 봐라! 만발했네!" 그 때 옆에 있던 남편이 핀잔하듯 말했다. "그게 무슨 안개꽃이야? 개망초지!" 분위기로 볼 때 애기 엄마는 그 꽃의 존재를 모르는 듯했다. 좀 무안한 표정을 잠시 짓더니, "저기에 장미꽃 한 송이 갖다 놔봐라! 안개꽃이지!" 젊은 애기 엄마의 센스이기도 하지만 사리분별이 명확한 남편에 대한 항변이기도 했다.
그렇다! 세상을 모두 명확하게 판단하고 바라볼 수 있겠는가! 누구든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판단하고 느낄 수 있는 자유는 있는 거다.그 애기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산과 들에서 지천으로 볼 수 있는 하얀 꽃이 나한테는 안개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빨간 장미 한 송이를 항상 꽂는다.
사실 망초와 개망초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하얀 꽃이다. 나한테도 그리 감흥을 주지 못했던 것은 망초라는 이름 탓이기도 하지만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잡초이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건설한 철도의 받침목에 붙어 들어왔다고도 하고 1950년대 미공법 480에 의한 잉여농산물 원조 곡물 속에 포함돼 전국적으로 퍼진 귀화 식물이라고도 한다. 일부 지역에서 '왜풀'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일본 침략 시기와 맞물려 입국했을 듯싶다. 굳이 이를 분리한다면 침략기에 들어온 것은 망초이고 잉여농산물 원조와 함께 들어온 것은 개망초가 아닐까 생각한다. 같은 국화과이지만 다른 꽃(풀)이다. '망초'가 남미가 원산지인 반면에 '개망초'는 북미가 원산지라고 백과사전은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잉여농산물을 받을 무렵 미군 부대 주변에서는 머리와 눈과 피부 빛이 다른 사람들이 태어났다.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대다수가 외국으로 떠났다. 그들 중에 유명한 가수도 있고 운동선수도 있다. 그들은 여전히 한국에서 개망초 신세였다.
60여년이 흘렀다. 요즘 아이가 20명이 태어나면 그 중 한 명이 혼혈이라고 한다. 북한 탈출 학생도 지난 6월까지 2000여명이 넘어섰다고 한다. 이들은 외국인이 아니라 바로 한국인이다. 탈북 학생이나 다문화 가족 자녀들의 학교 적응이 녹녹치 않은 것 같다. 그들에 대한 시선이 내안의 민족 자긍심으로부터 나온 거부의 몸짓이 아니었는지 나부터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우리 동네 할아버지들은 개망초를 풍년초라 불렀다. 요즘 아이들은 계란 프라이와 같은 꽃이라 해서 계란꽃이라 부른다고 한다. 개망초가 외국에서 들어온 귀화 식물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우리 땅에 자라는 우리의 식물이고 풀이고 꽃인 셈이다.
북한에서는 망초를 잔꽃풀, 개망초를 돌잔꽃이라 부른다고 한다. 거부감이 많이 잦아든 이름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개망초의 이름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망초라는 이름에서 느끼는 거부감이 없이 안개꽃으로 볼 수 있는 감성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정안천변의 30대 젊은 애기 엄마는 아마도 학교 선생님일 것이라는 확신이 가시지 않는다. 개망초에 장미 한 송이를 놓은 것처럼, 다양한 모습의 우리 학생들 앞에 선 장미꽃 같은 선생님!
시원한 소나기라도 내려주었으면 하는 8월의 태양이 따갑다. 개망초의 꽃말이 '화해' 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 개망초는 귀화한 꽃이 아니다. 우리의 토양에서 우리의 물과 바람과 햇빛을 머금고 자란 우리의 꽃이다. 탈북 학생과 다문화 자녀가 모두 한국인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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