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플 공주, 백제에서 세계로!

최 영 의

공주에서 자라고 배운 후, 공주에서 가르쳤다. 그리고 떠났다. 강산이 두 번 바뀐 뒤 다시 찾았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달라진 모습에, 그리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변하지 않은 모습에, 그 전에도 몇 년에 한 번씩 찾은 고향이지만 백제문화제의 함성이 찬란히 빛나는 이 가을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온 몸으로 내 삶의 뿌리인 이 땅의 꿈틀거림을 느낀다.

고향을 찾은 이의 마음으로, 수 많은 이국땅을 밟은 이방인의 눈으로, 역사적인 행사를 알리는 각종 깃발과 사인들, 시민친화공원으로 탈바꿈한 금강의 모습, 까만 밤 강물을 현란하게 수놓은 동화 속 주인공들의 수상 조형물과, 산성공원의 S 라인성터를 빛내주는 불빛들, 독특한 백제금관장식 모양의 금강다리 장식물, 온 주민이 합심하여 지역특색의 목소리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었던 퍼레이드, 자주색 백제시대 유니폼을 입고 시민을 성의껏 보필하는 시청 일꾼들, 내가 어느 미국 주립공원에 와있나 잠시 내 눈을 의심하게 했던 평화로운 모습의 수원지, 웅진의 얼을 현대에 되살린 고마나루 한옥마을, 박물관, 도서관 등의 종합 문화 예술지역, 시민과 같이 호흡하는 행복의 나눔기획, 해인사 팔만대장경 탐방여행 등등, 좁은 지면을 거부하는 일련의 감동 시리즈가 그동안 떠나 있었던 이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했다.

끈끈한 공주인의 자부심과 더불어 분명히 이 웅진은 탈바꿈하고 있었다. 더 이상 고요한 곰의 마을을 거부하며, 일 주일 이상 계속되는 백제문화제 행사장들을 기웃거리며, 거리 이 곳 저곳을 밟으며, 공공기관을 방문하며, 사업체나 기관의 직원 전화 목소리를 들으며, 이 곳을 세계의 지도에 올려놓고 보고 있는 내 자신을 어쩔 수 없었다. 스위스에 가서 그랬듯이, 이태리에서 그랬듯이, 그리고 미국에서 늘 그러듯이, 나는 어느새 더 이상 내 소시적 고향이 아닌, 큰 세상에서 포효할 수 있는 대웅의 모습으로 공주를 그려보고 있었다. 이 엄청난 퍼레이드에 왜, 이 멋진 강축제에 왜, 이 역사 깊은 고고학의 메카에 왜,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없는가 하고 질문을 하면서. 무엇이 이 유일무이한 고장의 진면목을 더 큰 세상의 관중과 나눌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자문하면서, 무엇이 이 곳의 힘인가 하고,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하고, 순진한 희망일지 현실을 모르는 아이디어일지 모르지만 나름대로의 생각과 제안들을 적어본다.

우선 공주의 얼은 백제수도의 긍지와 계룡산국립공원을 비롯한 자연에서 뿜어 나오는 정신적인 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서울 명동의 명품 쇼핑도 아니고 실리콘밸리의 하이텍도 아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카피할 수 없는 역사의 영혼이다. 이 고도는 오직 하나, 그것이 불변의 진실이다.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이, 나직이 고요한 베르네가, 로렐라이 언덕이 뭐 그리 특출해 세상 인종들로 바글거리는가? 찾는 이들이 환호하고 그 곳에 사는 이들이 자랑으로 아끼고 보존한다. 눈에 띄게 발전한 백제문화제와 늘어나는 문화행사들은 이러한 면을 이미 감지한 분들의 눈물나는 사랑과 엄청난 기획력의 반영이다. 하지만 더 많은 지역주민들과 학생들 그리고 교육자들이 이를 더 심각하게 인정하는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이 작은 마을에서 나온 수 많은 국내외 인재들을 보라. 이 땅의 기는 우연이 아니다. 연미산 정상이 펼쳐 보여주는 이 분지의 신비한 에너지를 느껴 보라. 설령 훗날 세상의 하늘을 훌훌 날 꿈이 있더라도 우선 시작하는 이 곳을 긍정하라. 이러한 의식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충만할 때, 그 뭉쳐진 힘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대전에도 있는 백화점이 없다고, 천안에도 있는 기차가 없다고 하지말고 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시간의 혼을 자랑스러워 하라. 이러한 자세로 타지인을 맞이했을 때 그들을 어찌할 수 없는 자석의 힘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곳곳에서 친절한 음성을 내는 곳, 그 인적자원이 바로 공주의 꽃이 될 수 있다. 우체국 안내데스크의 상냥한 안내, 웅진도서관 전자실 직원의 친절한 가이드, KT 전화 도우미의 차분한 서비스 등은 무엇이 필요하냐?　의 태도에서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영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태도 전환의 일례이다. 그 서비스 언어는 이곳을 선진국의 대열에 끌어올린다.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고 간과할 일이 아니다.

이런 자긍적이고 서비스 정신에 입각한 자세로 더 많은 내국인과 외국인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백제문화제를 예로 들어보자. 수 많은 행사가 지역주민, 특히 중장년층이 주 관중이 되어 이루어지고 있었다. 공주시내 시민들, 중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초등생들이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없을까? 학생들은 입시때문에 별 참여를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많은 돈을 들여 불꽃놀이를 하고 퍼레이드를 하고 예술행사도 한다. 하지만 관객과 참여자 그룹이 한정되어 있다. 이 페스티벌은 가히 세계적이다. 유럽 각 국 나라들이 여행책자를 빼곡히 메우는 그들의 크고 작은 페스티벌에 비교할 때 뒤질 것 하나 없는데 왜 우리는 그들을 여기서 더 볼 수 없는가? 세계를 안방으로 삼는 저렴 여행자들을 위해 HI Hostel (국제호스텔)을 금강변에 세우는 건 어떨지, 부여 구드레에 있는 호스텔이 왜 공주엔 없을 소냐. 그리고 공주시와 주요 행사를 그 홈페이지에 링크하는 건 어떨지, KAL기내 안내 잡지에 가을의 장소로 공주에 대한 기사를 내면 어떨지, 한국관광공사나 그 외 기관 산하의 한국관광 안내란에 공주를 더 알리는건 어떨지, 전국의 호텔 홈페이지에도 링크하고, 그리고 더 많은 영문팜플렛을 제작하여 전국 요소요소에 배치하는 것은 어떨지,

이런 글로벌한 관점에서 몇 가지 더 생각하자면 외국 도시와의 자매결연 등을 통한 국제화, 다양화 함양이다. 그런 시도를 통하여 상호 이해와 교류, 도움을 도모한다면 더 다양한 모습으로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한다. 이로써 우물안 개구리가 아닌 세계 속의 고도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세계언어인 영어의 존재가 인적자원을 통해서나 인쇄물, 온라인 상의 문장들을 통해서도 좀 더 수준 있게 되어야 한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기본영어회화 능력은 물론이고, 시청과 각 기관의 영문판 소개는 실수를 줄여 신뢰성과 호감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한 예로 공주시청의 영문판Festival 페이지에서 나는 너무나도 많은 실수를 발견하여 아쉬웠다. 단순한 철자문제뿐 아니라, 고유명사의 대소문자 혼란, 마침부호 미재 등등 기본적인 실수의 반복으로 어찌 타지인들에게 긍정적인 어필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신뢰와 호감이 증가된 상태에서 바라보는 곳은 설령 지형적으로 똑같다 하더라도 감정적인 결과는 다를 것이다. 타국의 유수한 공원과 명승지를 돌아다닌 내 눈을 놀라게 했던 수원지를 보자. 만일 공주가 더 알려졌다면 공주 시내에서 늘 보던 옆 집 아줌마와 아저씨 이외에도 우리는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을 마주칠 수 있을 것이다. 그 무드 만점의 물길 옆 산책로에서, 수원지 입구에 설치된 쉴 곳으로 학생들이 간혹 소풍을 온다고 이곳 터줏대감 언니가 말해준다. 나는 환상인지 뭔지 모를 꿈을 꾸어본다. 이 물가의 나무캐빈에서 하룻밤 묵는, 그린환경에 방해되어 그런 상업성은 가당치도 않다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경관이 너무 아름다운 걸 어쩌랴. 몇 년 안나오던 글도 나오게 생긴 그런 곳 인걸, 허황된 생각이라 차치하지 말고 그 누군가 예쁜 카페 하나 내면 어떨까? 아무튼 이 멋진 곳, 많이 사랑하고 마음과 몸이 즐겁게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이미 세워놓은 기존의 문화 건물들의 활성화를 통해서 더 많은 관광수입은 물론 공주의 이미지를 높이는 건 어떨까 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공주에도 느릿느릿 걸으며 먹고 즐기고 배우며 쇼핑까지 하는 차 없는 도로가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의 인사동 같은, 대학로 같은, 전주의 한옥마을과 같은, 파리의 몽마르뜨 같은, 물론 웅진에도 고마나루 한옥마을이 있고 전통 음식점들도 있고, 무령왕릉과 박물관, 도서관도 있다. 하지만 그 특별한 지역이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건 아니다. 관광버스가 늘 오고가는 건 아니다. 백제문화제 같은 큰 행사를 타는 게 사실이다. 그런 큰 덩치가 사라져도 늘 일년 365일 관광객들이 만족스레 어슬렁거리며 즐기는 거리를 만드는 건 어떨까? 찻집도 있고, 노천카페도 있고, 공예품 판매수레도 있고, 아이들 체험코너도 있고, 연인들 손잡고 들어갈 수 있는 아트갤러리도 있는, 자가용과 버스가 와 볼 것만 보고 가는 그런 분리적인 문화도시가 아닌, 사람들로 흥청이는 연결과 통합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각각 따로 서 있는 수려한 그러나 시즌을 타는 문화재가 더 큰 의미의 한 부분으로서 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현재 있는 공주한옥마을 근처는 그런 공간이 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사항은 공주시민들의 마음과 정신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이벤트와 장소를 꾸준히 개발하자는 것이다. 공주문화원 주최 해인사 탐방, 문예회관 각종 문예 예술 행사, 마곡사 음악 명상 템플스테이 등은 그 좋은 예가 아닌가 한다. 새로움을 창조한 후 적극적인 홍보를 곁들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시인 T. S. Eliot가 그랬듯이 나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의 원 안에서 경험한다. 이미 지나간 단절된 단편의 시간이 아닌 영원의 한 지점으로 되풀이 되는 과거의 존재로서 바라보고 내일로 이어질 그림을 그리면서 이 현재를 바라본다. 내 육신의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이 작고도 큰 과거의 도시, 그를 떠나 오래도록 이역만리를 돌며 다시 찾아본 이 곳에서 나는 새로이 발견하는 나의 끈질긴 뿌리와 세계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21세기의 에너지를 감지한다. 파워풀 공주의 아름다움이다. 오대양 육대주에서 찾아 나설 그 때까지 대공주인들이여, 이 곳을 노래하고 지키시라! 수십년 뒤, 그대들의 후손들이 멀리 떠나 다시 찾아와 공주인이어서 부끄러웠다　하지 않도록! 공주인이어서 세계인이 될 수 있었다　말할 수 있도록!

/미, 리치랜드대학교 영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