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병 철

후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인문계고 학생을 처음 가르치게 되어 수업에 활용할 좋은 자료 좀 보내달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죽겠다”는 것이었다. 올해부터 처음 시작한 ‘집중이수제’라는 것 때문에 수업이 많아진 것도 부담이지만, 담임에 또 다른 업무까지 맡아 ‘수업 준비하랴, 학급 운영하랴, 행정적인 업무 처리하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알고 지내던 초등학교 선생님을 만났더니 그 또한 하는 이야기가 “죽겠다”는 것이었다. ‘학업성취도 평가’ 때문에 초등학생도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지 못하고 방과후수업을 늦게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 죽겠고, 이런저런 공문에 처리해야 할 잡무가 많아 “정신이 없다”고 한다.

고등학교나 초등학교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에 이상하기도 하여 중학교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자신들도 그렇다는 것이다. 수업 외에 할 일이 늘기만 하고, 하라는 게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학업성취도 평가로 문제풀이 위주의 방과후수업은 물론 고교입시를 대비하여 야간자습까지 하게 되어 중학교도 정신없긴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렇게 대한민국 학교는 바쁘다. 학교만 바쁜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바쁘다. 살기 좋아졌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 바쁘기만 하다. 또 이렇게 대한민국 학교는 정신이 없다. 학교만 정신없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자체가 정신이 없다. 오죽하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군사권(현재는 전시 작전지휘권)을 남에게 주고서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반대까지 할 정도다.

사실 학교는 내가 청운의 뜻을 품고 교단에 첫발을 내딛던 이십 년 전과 비교하면 그동안 많이 변했다. 우선 화장실이 크게 좋아졌다. 예전 같으면 학생들이 화장실 청소하느라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용역회사가 담당하기도 하고, 비데까지 설치되어 학생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나아졌다. 다만, 여전히 휴지는 학생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2프로 정도 부족할 뿐이다.

또 고등학교마다 예전에는 없던 기숙사와 자습실 생겼다. 기숙사는 먼 지역이나 타 지역 학생들을 위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아껴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도 필요한 시설이다. 조선시대 향교나 서원에도 동재서재라는 기숙사가 있어 학생들이 그곳에 머물며 학문에 매진하였듯이 시간을 다투며 사는 오늘날, 학생들이 기숙사에 머물며 학업에 전념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만, 형광등 불빛 아래 좁은 자습실에서 한밤까지 고개 숙여 책과 씨름하고 있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면서 한편으론 점수 올리기에 급급한 우리 현실이 답답할 뿐이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보충수업! 요즘에는 방과후수업이라고 하지만 막상 예전 보충수업과 다를 바 없는 그런 문제풀이 수업이 계속되기도 한다. 이십 년 전 “아이들이 죽어간다. 보충수업 폐지하고 인간교육 이룩하자!”며 전교조가 결성되고, 정부 또한 입시교육에 대한 개선책을 다양하게 마련하기도 하였지만,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야간자습도 마찬가지, 예나 지금이나 O교시와 정과수업에 보충수업을 마치고도 학생들이 집에 가지 못하고 학교에 남아 밤늦게까지 자습을 한다. 다만, 예전에는 야간자습비를 따로 걷었지만, 지금은 걷지 않고, 예전에는 거의 강제로 야간자습을 하였지만, 지금은 대개 희망에 따라 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교육환경이 좋아지고,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 그런데 정작 변해야 할 것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거나 고착화된 것도 있다. 가령, 이십 년 전에는 없던 컴퓨터가 지금은 교사마다 보급되어 일하기가 쉬워지고 수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어 좋아졌지만, 업무는 더 늘어났다. 교재 연구할 시간만 줄어들었다. 하여 수업은 뒷전, 컴퓨터를 통해 처리하는 업무가 더 우선하기도 한다.

더구나 학교생활 대부분이 컴퓨터로 이루어지다 보니 인간적인 면마저 줄어들었다. 한 마디로 ‘인간은 없고 컴퓨터만 있으며, 교육은 없고 행정만 있을 뿐’이다.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교사를 ‘의식화교사’라며 문제교사 취급하기도 하였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한지도 모른다.

어쨌든 눈에 보이는 교육은 크게 좋아졌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교육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 본말이 뒤바뀌었다고나 할까, 겉은 화려하나 속은 병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위장병 걸린 사람들이 많고, 살긴 잘 산다는데 얼굴이 밝지 못하고, 피곤해 보이는 이들이 많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낮에 듣는 수업만 아홉 시간 또는 열 시간, 여기에 야간자습까지 온종일 바쁘게 돌아가는 대한민국 학교다 보니 놀 시간이 부족하고, 식사시간도 짧아 밥을 급하게 먹을 수밖에 없다. 소화시킬 여유가 없으니 위장병이 싹트는 게 당연할 수 있다.

위장병을 고치려면 속을 고쳐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위장병을 무시하다 보면 큰코다칠 수 있다. 사실 속보다 겉이 눈에 쉽게 띄는 만큼 겉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겉만 중요시해서는 안 된다. 속도 그만큼 중요하다.

교육은, 겉은 물론 속까지 변화시킬 때 진정한 교육이 될 수 있다. 교육이 위장병 환자를 고치진 못할지라도 적어도 위장병 환자를 양산하는데 일조하는 그런 역할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육이 아니라 진정한 교육을 생각하는 교육자라면. 겉으로 폼만 잡는 교육자가 아니라면.

수업 종이 울린다. ‘이번 시간엔 무슨 이야기를 해야 아이들이 졸지 않을지?’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내 처지가 우리 교육의 현실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참교육, 아이들이 졸지 않는, 해맑게 웃을 수 있는 그런 교육에 다시 희망을 걸어본다. 새 생명이 고개를 내미는, 이 화창한 봄날에.
/공주고 교사, 한국작가회의 시인